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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왕 계보 편=

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사 공부를 할 때 가장 신나게 배울 의지가 드는 시점이라하면 아무래도 고구려 역사쪽이 아니었나싶습니다. 광활한 지형을 넘나들며 밑으로는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고 때때로 그들과 동맹을 맺어 다른 세력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하고 위로는 대제국이었던 중국의 수,당을 견제해 주던 고구려. 고구려 역사만큼 사실 당당하고 배우기 즐거운 그런 역사의 시대가 우리에게 어디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런 고구려 시대에 과연 어떤 왕이 있었고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고구려 왕 계보


고구려는 우리가 잘 아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등장하는 동명왕 때부터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까지 대량 700여 년간 한반도의 북부지역과 중국의 동북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나라입니다.


고구려의 시조를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해모수와 유화부인의 설화까지 올라가야 하는데요. 사실 해모수라는 인물은 출생부터 사망까지 모두 미상인 상태로 딱히 밝혀진 사실이 없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지상에 내려와 하백의 딸인 유화를 만나 혼인을 하였고 유화의 아비인 하백이 옳지못한 행동을 하여 해모수가 분개하였고 결국 유화를 버리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 유화는 해모수의 아들을 이미 갖고 있었고 이에 분노한 하백을 피해 부여의 왕과 다시 결혼하여 전 남편인 해모수의 아들을 낳고 살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화와 해모수의 아들은 그 시기 부여의 왕의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건국하여 살게 되는데 이 나라가 바로 고구려이며 고구려를 건국한 이가 바로 익히 우리가 잘 아는 주몽 동명왕이라 부르는 이입니다. 위 표는 사실 왕과 왕비들 그리고 그 자식들로 이어지는 계보도라서 복잡하기도 한데요. 그래서 좀더 고구려왕 계보도로만 보기 쉬운 표를 준비해보았습니다. 밑에 있는 고구려왕 계보도를 참고해보도록 하죠.


2. 좀더 보기 쉬운 고구려왕 계보


고구려의 1대 왕은 앞서 말씀드린데로 주몽이라 불리던 동명성왕입니다. 고구려의 시조로서 B.C 37~B.C 19 까지 고구려를 다스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대왕은 주몽과 예씨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유리왕인데요. 동명성왕의 맏아들로 알려져있으며 수도를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긴 업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쭉 내려가다 6대 태조왕의 시대가 도래되는데요. 


태조왕은 2대 유리왕의 손자로 옥저를 정복했으며 중앙집권 체제를 정비하여 고대 국가를 완성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때부터 왕위 세습제도가 확립되기도 했지요. 또한 9대 고국천왕은 진대법을 실시하여 빈민구휼책을 마련한 왕으로 본격적인 왕위의 부자 상속을 확립한 왕권 강화를 만들어 나간 왕이기도 합니다. 11대 동천왕 역시 유명한데요. 10대 산상왕의 아들로 위나라와의 전쟁으로 환도성이 함락되는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은 왕이기도 합니다.

그 후 쭉 왕들의 세습이 이어지게 되는데요. 15대 미천왕은 낙랑국을 멸망시킨 왕으로 대동강 유역을 확보한 유명한 왕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16대 고국원왕은 미천왕의 아들로 백제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군과 평양성에서 전투를 하다 현장에서 전사한 왕이기도 합니다. 17대 소수림왕 또한 유명한데요. 고국천왕의 맏아들로서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설립하여 국가체제를 정비하려 한 왕입니다. 소수림왕때문에 신라,백제보다 가장 먼저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분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바로 19대 광개토대왕이 391년에 등장하게됩니다. 이분의 업적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단연 제일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사항은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하고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했으며 광개토대왕릉비를 만주 곳곳에 세울 정도로 넓은 영토확장을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가히 고구려의 꽃을 피웠던 시기이기도 하지요. 그렇기때문에 20대 장수왕때 역시 고구려의 부흥기를 이어받을 수 있었는데요. 광개토대왕의 맏아들인 장수왕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적극적인 남진정책을 추진한 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장수왕의 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사실상 고구려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특히 24대 양원왕때에는 신라 백제에게 한강 유역을 잃게 되기도 하지요.

그래도 26대 영양왕때에는 을지문덕 장군의 덕으로 살수에서 수나라군을 섬멸한 살수대첩도 있었고 아직 강맹한 고구려의 위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27대 영류왕은 자신이 등용시킨 연개소문에게 비참하게 죽게 되고 고구려 마지막 28대 왕인 보장왕때는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평양성이 함락되어 결국 고구려는 멸망하게 되고 맙니다.

<출처 : 네이버>

결국 고구려는 약 700여년간 만주를 호령하던 기개와 용맹함을 나당연합군에 의해 잃게 되고 맙니다. 동명성왕-유리왕-고국천왕-동천왕-미천왕-고국원왕-소수림왕-광개토대왕-장수왕-영양왕-보장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 고구려 왕 계보였습니다.


고구려의 역사는 사실 좀더 자세히 알수록 재미있고 자랑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고구려는 영토확장에 힘을 들인만큼 내실을 다지지 못한 문제점도 있습니다. 거기다 원활한 영지에 비해 농사를 짓거나 토지를 발굴할만큼 좋은 영토를 지니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점들은 백성들이 살기에 아무래도 당연히 좋지 않을수밖에 없었습니다. 밖으로만 나도는 왕과 권력자들. 백성들은 그만큼 보호 받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상 고구려 왕 계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알수록 재미있는 우리의 역사 원하는 정보 얻으셨기를 바라며 이만 고구려 왕 계보 알아봅시다 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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